흥미로운 직업 세계
직업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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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넷이 만난 사람들
- 성우 안지환
목소리로 캐릭터에 숨결을 불어넣다
성우(聲優)는 소리 성(聲)과 뛰어날 우(優)의 뜻을 가진 직업이다. 즉, 목소리로 연기하는 배우라는 뜻이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캐릭터는 무엇보다 인상 깊게 청취자의 귀를 파고든다. 때로 노인이 되고, 때로는 어린아이가 되며 수많은 캐릭터를 목소리로 연기하는 이들, 성우 안지환을 통해 성우의 세계를 들어보자.
노래를 하는 가수는 무대에서 하고, 연기자는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고, 모델은 패션쇼 런웨이에서 워킹을 하고... 이대로 설명하면 성우는 마이크 앞에서 연기를 하는 사람이다. 안지환은 “성우는 목소리가 좋아야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라 연기자여야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말한다.“1993년도에 MBC 11기 공채로 입사했으니까, 지금 성우로서 24년차가 되었습니다. 스물다섯에 입사를 했죠. 꽤 어린 나이었어요. 지금은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어요. 성우가 되는 과정을 잠깐 말씀드리면, 성우는 공채를 통해야 될 수 있어요. 공채 출신이 아니면 성우협회에서 인정을 하지 않아요. 저는 MBC성우극회 소속이기도 한데, 현재 15년이 넘게 SBS <동물농장>의 목소리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성우 안지환의 어린 시절 꿈은 배우였다. 목소리로 연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무대에 서서 연기를 하는 배우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요즘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나면 제가 어릴 적부터 입버릇처럼 ‘나는 방송국에서 경비를 하더라도, 방송국에 들어갈 거야’라는 말을 했다더라고요. 남들 앞에 서는 일은 떨리고 긴장됐지만 그 느낌이 좋았어요. ‘보이스카웃’ 활동도 열심히 했는데, 행사를 가면 교육 콩트를 만들어 보여줬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보이스카웃’이 하고 싶었던 이유는 다른 사람들 눈에 띄는 활동들이 많아서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연극반에 들어갔고, 6학년 때 대한민국청소년연극제에서 우수연기상을 받게 되면서, ‘계속 이 길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후 예고에 다니고 싶어 합격했지만 결국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 인문고에 가게 되었고, 연극반 대신 중창단에 들어가 무대에 서곤 했다.
고등학교 시절 연극도 하고 여러 가지 활동을 했지만 성우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그때는 그저 방송국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시험을 봤는데, 제대로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응시했기 때문에 불합격했어요. 결국 경영학과에 입학했고 군 제대 후에야 성우시험을 보게 되었어요. 어느 날, 어머니가 손수 밥상을 차려주셨어요. 밥을 먹는데 방송에서 모집 공고가 나오는 거예요. 그때 어머니가 ‘나는 성우가 좋더라. 점잖은 직업이잖니’ 이렇게 권하신 것이 계기가 되어 시험을 보게 되었죠. 그날은 군 제대한지 이틀째 되던 날이었어요.”
하지만 그는 뒤늦게 본인이 본 시험이 MBC 방송국 공채시험이 아니라, MBC 방송문화원 성우 과정 1기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다른 합격생들도 집에서도, 방송국 성우시험에 합격한 줄 알았기 때문에 결국 대학교 한 학기 등록금을 문화원 학원비로 쓰며 6개월 과정을 끝마쳤다. 다행히 나중에 방송국 공채 시험에 합격해 성우가 되었다.
성우가 하나의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하는 과정은 연기자들의 것과 유사하다. 성우를 섭외하는 과정에서도 대부분 프로그램 콘셉트에 따라 성우를 섭외한다. 그래서 새로운 목소리 연기자보다는 기존의 베테랑 성우를 섭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신만의 개성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섭외가 완료되어 대본을 받으면 잠깐의 예독 시간을 갖게 됩니다. 대본은 미리 주기도 하지만 그 자리에서 바로 받기도 해요. 시사 시간도 있는데, 그림을 보여주면서 호흡을 보고 그림을 체크하는 겁니다. 그리고 부스로 들어가 연기를 합니다. 이게 일반적인 경우고요. 저 같은 경우는 대본을 받고 바로 연기에 들어갑니다. 이는 충분히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노력을 한 결과입니다. 그 덕분에 안구건조증이 생겼을 정도니까요. 무엇보다 장르를 이해하고 시청자나 듣는 사람들이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20년을 넘게 성우로 일하면서 그가 참여한 프로그램이 벌써 1만 여 편이 넘었다고 한다. 그중 SBS <동물농장>은 15년을 넘겼다. 일에 대한 보람에 대해 묻자 그는 아직 보람을 느낄 겨를이 없다고 말한다.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는 중이고 정말 끊임없이 매순간순간 노력하고 있어요. 이런 과정 중에 있기 때문에 아직 보람이라고 말하기엔 이른 것 같아요. 여전히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중이니까요. 나중에 은퇴를 한다면 그때서야 순간순간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일을 하며 힘들 때는 언제였는지를 묻는 질문에도 오랜 시간 함께 했던 <동물농장>이 등장한다.
“<동물농장>은 더빙하면서 슬퍼서 많이 울게 돼요. <강아지 공장의 불편한 진실>도 그런 경우였죠. 한 번은 각막 기증을 하겠다고 한 개가 암으로 죽어가는 것을 찍고 있었어요. 개가 죽어가는 그 순간까지 주인인 할아버지를 보고 꼬리를 흔들면서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더빙을 하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더빙하는데 이틀이 걸렸어요. 녹음할 때 화장지를 옆에 가져다 놓을 정도였어요.”
성우 안지환은 “더 이상 발전하고 싶지 않고, 그대로 퇴보해버려도 좋다면 ‘책을 버려라’라고 말할 정도로 성우에게 책읽기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성우는 항상 공부를 해야 합니다. 인터넷은 나를 부자로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본질적인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분명 ‘책’이에요. 책 읽는 것은 몇 번이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성우에게 꼭 필요한 자질은 “감수성”이라고 생각해요.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도 쉽게 감정이입이 되어서 눈물이 나는 사람, 예를 들어 <해리 포터>를 영화로 볼 때마다 책으로 볼 때 더 재밌었다고 말하는 사람. 누군가와 통화할 때 상대가 어떤 모습으로 통화할 지 머릿속으로 잘 그려지는 사람.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볼 수 있는 사람이 좋은 목소리를 가진 사람보다 성우로서 자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최선을 다하면 내일은 만들어지는 것!”
마지막으로 꿈을 꾸는 이들에게 오늘에 최선을 다하라고 조언했다.
“오늘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그건 행운이 되지 않아요. 행운은 준비와 기회가 만나는 것이니까요.”
<성우>
성우는 라디오, 텔레비전, 영화녹음 등에서 연기의 감정을 자신의 목소리에 실어 연기한다. 방송 연출가로부터 역할을 배정받고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의 각종 프로그램에서 방송극의 내용, 분위기, 대사, 역할 등을 소화하여 목소리 연기를 한다. 외국 영화의 대사를 우리말로 녹음할 때, 배역의 성격과 내용에 따라 어린이, 청소년, 노인 등 다양한 목소리를 연기한다. 영화녹음 또는 외국영화의 대사를 우리말로 녹음하며, 교양프로그램을 해설하거나 라디오와 방송의 사회를 보기도 한다. 성우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독특한 목소리를 키우고 가꾸며, 다양한 배역을 소화해내려는 연기에 대한 열정과 노력이 요구된다. 발음 및 억양 교정을 통해 표준어를 정확하게 발음하고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언어와 문장에 대한 순발력과 센스도 중요하다. 예술형과 탐구형의 흥미를 가진 사람에게 적합하며, 스트레스 감내, 사회성, 성취 등의 성격을 가진 사람들에게 유리하다. 성우가 되기 위해서는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이 요구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대학교졸업 이상의 학력을 요구하기도 한다. 전문대학이나 대학교에서 연기 관련학과를 전공하면 유리하고, 성우 연기지도 학원 등에서 교육과 훈련을 받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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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 창직자 인터뷰
- 퍼스널브랜드코치
스마트한 세상이 이끄는 창직의 블루오션
정은상| 맥아더스쿨 교장
지금 하시는 일은 주로 무엇인지요?
현재 맥아더스쿨이라는 창직스쿨에서 퍼스널 브랜딩 코치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창직을 하거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싶은 분들에게 코칭을 통해 직업을 찾고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특히 은퇴자들을 대상으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을 활용한 새로운 직업분야를 만들고 있습니다. 또 저처럼 다른 분들의 새로운 시작을 코칭해주실 코치를 양성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창직은 중장년층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최근 인생2모작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100세 시대를 맞으면서 50대, 60대의 은퇴는 또다른 준비를 위한 시작이지요. 일모작으로 열심히 일하고 난 후 50대 중후반이나 60대 초에 퇴직을 하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직 얼마든지 일을 할 수 있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잠재된 능력을 찾아내서 브랜드를 만들면 80대까지도 현역으로 충분히 일할 수 있습니다. 회사이름인 ‘맥아더스쿨’도 ‘노병은 죽지 않는다’는 말을 남긴 맥아더 장군에게서 따온 것입니다. 맥아더 장군이 1950년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했던 당시 그의 나이가 무려 70세로 지금나이 85세에 해당됩니다. 1960년 무렵 국내 남녀 평균수명이 50 대 초반이었으니 놀랍지요. 지금 중장년층인 50,60대는 맥아더장군에 비하면 청년입니다. 저도 처음부터 이런 일을 하려고 시작했던 것은 아니지만 1차 베이비부머 세대 700만명에게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등대지기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도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다른 사람의 창직을 돕는 일을 시작하신 계기가 있으신지요?
정말 우연히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009년 말 애플의 아이폰3를 구입하게 되었는데 주변에 스마트폰 사용법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 열심히 스마트폰과 SNS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스마트폰과 SNS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면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 느낌이었지요. 그 후 여러 사람들에게 스마트폰 사용법을 무료로 알려주고, 뉴스레터도 발행하고 유투브 동영상도 만들어 업로드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무료로 계속 일을 했지만 아무래도 공짜이다 보니 사람들이 그 가치와 소중함을 잘 깨닫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2013년에 맥아더스쿨을 정식으로 만들면서 유료 서비스로 은퇴자에게 스마트기기를 활용한 코칭을 해주고 있습니다. 1주일에 한번 2시간 코칭을 3개월에 걸쳐 하면서 약간의 수강료를 받으며 지금까지 4년3개월 동안 약165명을 코칭했습니다. 별도의 커리큘럼을 두지 않고 1:1 맞춤 대화식으로 코칭을 하고 있는데 많은 분들이 좋아하십니다. 특히 정부기관이나 외부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스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여러 사람을 만나야 하는 코칭 업무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그동안 외국계 은행에서 일하다 1999년 46세에 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교육사업, 부동산 등 다양한 일을 경험했었던 것이 여러 사람을 만나는 코칭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또한 저 스스로 먼저 은퇴자였고 스마트기기를 활용하는 재미를 느꼈기에 다른 분들에게도 잘 설명하고 이끌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기억에 남는 중장년 창직자들이 있으시면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화가이면서 30년 이상 농협에서 근무하신 정병길 화가는 국내 최초의 아이패드 화가로 활동하고 있고 저에게 코칭을 받은 조항수 대표(시너지온)는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면서 따라하기만 하면 요리가 되는 모바일 요리스쿨을 설립하였습니다. 요즘 웹툰이 인기있으면서 누구나 앱을 통해 만화를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스포츠조선 헹가래 유환석 화백을 비롯한 여러 명의 만화가들이 아이패드 만화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 글로벌시대를 맞아 여행도 단순히 여행사를 통한 패키지상품이 아닌 좀 더 다양한 상품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많지요. 비용도 절감하면서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여행코칭도 필요하다는 것에 착안하여 남기선씨, 신영 도씨 등은 저와 함께 여행자들을 위한 코칭 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분들 모두는 스마트기기를 활용하고, 시대의 변화를 잘 읽고 트랜드를 이끌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창직이 특히 중장년층에게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중장년들이 일모작 퇴직 후 할 수 있는 일은 재취업, 창업 그리고 창직일 것입니다. 이 중 재취업은 상대적으로 가장 쉽긴 하지만 재취업자와 고용주 간의 미스매치가 가장 두드러져 길어야 2년을 넘지 못하고 다시 취업을 해야 하는 상황도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창업은 자본이 있으면 가능하지만 워낙 중장년 창업자가 많아 레드오션에 발을 들여 놓았다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자기자본 잠식은 물론 타인자본까지 손해를 끼치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많이 보았습니다. 이 세 가지 중 창직은 가장 어렵지만 백세시대에 남은 시간이 30~40년이라고 생각하면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스로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은 인생 이모작의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가급적 많은 자본이 필요한 것보다 소자본이나 무자본으로 할 수 있는 창직을 고려해 보는 것이 더 바람직하겠지요.창직을 고민 중이신 중장년층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부양할 가족이 있고 남은 인생이 많은데 마냥 여유만 부릴 순 없겠지만 우선 자기 확신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면 뜻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처음 시작했을 때 앞이 불투명했으나 이제 돌이켜보면 그때 판단이 그릇되지 않았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혼자 고민만하면 발전이 없습니다. 스스로 이런 창직에 대한 생각에 미치지 못한다면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멘토를 찾거나 코치를 만나 계속 대화하면서 자신의 길을 찾는게 좋습니다. 창직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누구에게 의존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작은 일부터 스스로 해결해 보려는 노력이 있을 때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앞으로는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직업이 생겨날 것입니다. 이제 까지 존재했던 직업에 연연하지 않고 발상을 전환하여 새로운 직업에 눈을 뜨면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블루오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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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창직자 인터뷰
- 청소년진로교육잡지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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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있는 일(사업)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
서울시교육청, 한국고용정보원과 함께 청소년진로월간잡지 MODU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MODU는 청소년 진로월간잡지로서 진로정보, 학습법, 멘토링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현재 서울지역 314개 모든 고등학교를 포함하여 전국 700여 개 중고등학교(주로 고등학교)에 배포하고 있으며, 9월부터 본격적으로 서울시 중학교에도 배포할 계획입니다.
잡지 발간뿐 아니라 EBSi 듀냐페이퍼, 한국고용정보원 웹진 ‘커리어엔진’, 소위 명문대라 불리는 대학의 합격생 수기를 전자책으로 출판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청소년에게 무료로 진로 및 교육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청소년이 하나의 인격체로서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진로, 꿈을 위해 살 수 있도록 선배로서 응원하고, 멘토가 되어 줌으로써 대한민국을 바꾸어 나가고 있습니다. - 처음 어떻게 이 아이디어(일)를 생각하게 된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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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접한 기사가 있습니다. ‘강남 학생의 꿈은 의사, 교수, 금융인, 강북 학생의 꿈은 교사와 회사원’이라는 기사로 부모님의 소득 수준에 따라 자녀의 진로 목표나 꿈까지도 달라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출신 지역과 출신 배경에 따라 꿈이 달라지는 현실이 안타까웠고, 진정으로 자신만의 진로를 찾지 못한 청소년이 가여웠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청소년의 행복과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습니다.
MODU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를 먼저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현재 진로/적성/꿈을 진단해 주고 정보를 제공해 주는 사설 기관들은 학생들에게 수십, 수백만 원의 수강료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이런 현실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모든 학생이 평등하게 꿈을 꿀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단순히 진로와 꿈에 대한 콘텐츠를 무료로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나아가 이를 기업의 형태로 영속할 수 있도록 하나의 탄탄한 시스템을 만들기로 결심하였습니다. - 창직 아이템의 시장성은 어떻게 파악하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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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로 콘텐츠를 제공하는 대신, 기업들의 광고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형태의 무가지 비즈니스는 이미 다년간의 사례를 통해 충분히 검증되었습니다. ‘FOCUS’, ‘메트로’, ‘대학내일’, ‘M25’와 같은 다양한 무가지들이 이미 시장에서 비즈니스를 검증받고 시장을 형성하며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구독료가 아니라 광고를 중심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무가지 비즈니스 모델은 충분히 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검증받았습니다.
MODU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매체가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차적인 사업의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또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광고할 유인이 있는 광고주로서 대학, 온오프라인 교육 회사, 참고서 및 문제집 출판사, 휴대전화와 PMP 등 전자기기, 패션업체 등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으며 시장의 규모가 크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또한 청소년과 직접 만나고 소통하면서 청소년이 자신의 눈높이에 맞는 진로 정보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니즈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창직에 도전하면서 두려움은 없었나요?
- 솔직히 실패하더라도 그 경험 자체가 스스로에게 큰 성장과 교훈을 줄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창직에 도전한다거나 혹은 취업을 하더라도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두려움이 있기는 했지만 내가 잃을 것은 없다는 생각으로 자신 있게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 본인의 능력, 지식, 대학의 전공은 창직과 연관성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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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였고 관련해서 마케팅과 전략 등을 재미있게 공부했었습니다. 그런데 MODU는 청소년 진로잡지이자 동시에 교육 콘텐츠 개발을 목표로 하는 회사입니다. 사범대나 교육학과 전공생들이 가장 관련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창직하는 과정과 운영 자체가 경영학과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하는 것이었으며 사업계획서 작성 등에서 전공 지식이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잡지, 그리고 교육 콘텐츠라는 부분에서도 비록 제가 언론정보학과나 교육학과가 아니었지만 해당 전공 출신의 친구들에게 많은 조언을 구하며 공부하고, 또한 그 친구들을 파트너로서 함께 일하면서 보완이 가능하였습니다. - 창직 준비 과정에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요?
- 창직 후 몇 개월이 지나면서 초기에 생각했던 것만큼 성과가 나지 않고 천천히, 그리고 예상과 다른 부분들이 많이 발생하였을 때입니다. 대부분 사업계획서의 예측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1년이 지나서 막상 현실로 그 결과를 받아들이게 되면 불안감과 동시에 향후에 대한 걱정을 하기 마련입니다. 저 역시 초기 예측과는 달리 회사의 성장 속도가 다르고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있는 것에 힘들기도 했었습니다.
- 그러한 난관, 고비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 가장 힘들 때 마다 버팀목이 되어 준 건‘ 꿈’과‘ 사람’입니다. 저희는 전국 모든 청소년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싶다는 확고한 목표 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힘들어도 다시 그 목표를 되새기며 열심히 업무에 복귀했지요. 그리고 슬럼프가 있을 때마다, 고비가 올 때마다 저를 붙잡아 준 것은 저희 잡지를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청소년 독자들과 함께 일하는 동료 직원들입니다. 자신의 아이디어로 창직을 하고 대표가 되어 회사를 이끌어 가더라도, 결국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회사의 상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국가 차원의 지원을 받은 사항이 있다면?
- 저희는 사회적기업진흥원과 경기복지재단(사회적기업경기재단)에서 주관하는 청년 등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선정되어 약 1년간 멘토링, 컨설팅 및 사업자금 일부를 지원받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술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자본금 일부를 융자받았으며 현재 서울특별시교육청과의 제휴를 통해 잡지 배포 및 홍보를 효과적으로 실시하고 있습니다.
- 창직 준비 과정에서 도움을 받은 정보가 있다면?
- 저는 경영학과 출신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조직 운영이나 기업 경영에 관한 지식은 풍부한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인쇄업, 잡지업, 교육업 등에 대한 정보는 부족하였기에 관련 도서 및 월간지를 통해 정보를 얻고 업계와 관련된 행사 및 세미나에 참석하며 정보를 얻고 네트워킹을 했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창직을 하고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 데 필요한 정보들을 얻기 위해서 사회적기업진흥원 등의 웹사이트에서 정보를 얻었습니다.
- 어떤 인물, 어떤 기관?
- 삼성전자에서 수십 년간 개발 관련 부서에서 근무를 하시다가 퇴직을 하고 제조업으로 창업을 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창업교육을 듣다가 우연히 알게 되어 지금까지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데, 그 수십 년간의 노하우와 경험이 있으셨기에 제가 하는 방향에 대해서 많은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항상 고민이나 문제점이 생기면 같이 고민해 주는 분을 만나게 되어 지금까지 올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 창직 과정에서 주의할 점이 있다면?
- 일반적인 창직자들은 사업에 관계된 법률적 지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법무, 세무, 노무 등의 영역의 지식은 사업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미리 공부를 하거나, 비용을 아끼려고 하지 말고 전문가에게 필히 상담을 받는 것을 추천합니다. 사업자 등록 과정, 상표 등록 과정, 계약서 작성 및 세금 신고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나중에 발생할 위협을 줄이는 길입니다. 동시에 자신이 더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시간을 버는 길이기도 합니다.
- 창직 과정에서 꼭 알아야 할 점이 있다면?
- 첫째로는 사업 아이디어에 집중하기보다는 좋은 팀을 만나는 데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사업 아이디어는 트렌드와 외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수정 가능하지만 같이 일하는 파트너는 바꾸기 힘들며 기회비용도 대단히 큽니다.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는 누구와 함께 일하느냐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둘째로는, 아이디어로만 돈을 벌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많은 창직자들은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상품, 서비스만 있으면 저절로 돈이 벌릴 것이라 기대합니다. 하지만 탄탄한 사업모델과 수익분석이 없이는 절대로 지속 가능한 기업을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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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직아이디어 도출 후 창직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해주세요. - 아이디어에서 창직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요한 점이 있다면 비즈니스 모델을 구체화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디어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니즈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채우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지속시키는 것은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저희는 저희의 아이디어에 가장 어울리는 비즈니스 모델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잡지의 유가 판매도 저희의 고려 대상이었지만 처음에 생각했던 기회의 평등이라는 아이디어에 더욱 충실하기 위해 무가지 비즈니스 모델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진로 콘텐츠와 무가지 비즈니스 모델. 두 가지 결합이 지금의 창직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창직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이 있다면?
- 잘 몰랐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성공의 시점을 어느 시점으로 보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저희의 사업으로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변화된다면 그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름대로는 시장에 대해서 충분한 조사를 했지만, 실제로 겪은 사업의 현실은 달랐습니다. 이것들에 대해서 충분히 알았다면 우리는 사업을 시작할 수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적당히 몰랐지만 용감하게 실행했던 용기가 있었고, 그 덕분에 창직에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행인 것 같습니다.
- 창작아이디어 도출 후 창직에 이르기까지 어려움이 있었다면?
- 사람들을 구하기는 하였지만 막상 회사처럼 능수능란하게 조직을 운영하는 부분에서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특히 저희의 경우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도 많았기 때문에 더욱 시간의 효율적 사용과 업무 시간 효율성 제고가 어려웠었습니다. 몇 시간을 일할 것이며 어떻게 서로 업무 공유 및 소통할 것인지 등에서 시행착오를 꽤 겪었던 것 같습니다.
- 이를 어떻게 극복하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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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는 편집팀과 운영팀으로 나누어서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또 운영팀은 다시 광고, 대외협력팀과 배포담당팀으로 나누어져 조직화되었습니다.
창업멤버들의 스케줄에 따라 유동적으로 움직이되, 하나의 보고체계를 이루어 서로의 업무를 보고했고, 여러 업무들은 부딪히면서 배워나갔습니다.
처음 MODU 창간호를 배포할 200여개의 학교에 전화하고 방문하는 일, 광고를 위해 100개가 넘는 재단과 기업들에 일일이 전화와 방문을 했던 일. 100Page의 잡지를 처음으로 만들고 편집했던 일은 한 사람의 PM 아래 조직된 팀이 업무를 분담하는 시스템하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창업멤버 모두가 학생이었기에 각자의 업무 능력과 가용시간에 따라 업무를 분담하고 PM의 책임하게 업무분담이 이루어졌던 점이 저토록 많은 일을 가능하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창직 과정에서 잊지 못할 경험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 창간호가 배포된 이후에 P&G에서 위스퍼를 학교에 샘플링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게 되었습니다. 서울시내 여고에 학생들에게 직접 제품을 전달하고 이벤트에 참여시키는 일이었는데, 더운 여름날 일일이 박스를 날라야 했습니다. 엘리베이터조차 제대로 없던 사무실에 2만개가 넘는 위스퍼와 잡지를 나르며 땀을 흘렸던 일을 모두는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프로모션과 이벤트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힘들었지만 학생들과 클라이언트, 그리고 MODU 모두가 만족했던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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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직 과정에서 제3기관, 인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면?
어떤 인물, 어떤 기관, 어떤 내용인가요?
- 경기복지재단의 사회적기업 육성사업에 선정되어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사업 실비 지원과 함께 사업 멘토링, 각종 강의를 통해 유무형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정부의 재원을 이용하게 되면서 여러 서류 작성 등을 실제 업무로 부딪히면서 배울 수 있었고, 재단에서 알려주는 정보들을 통해 많은 기회를 열 수 있었습니다.
- 창직 구체화 과정에서 주의할 점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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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직 구체화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성이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장에서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필요로 하는가를 확인하고, 그 니즈를 꾸준히 충족시킬 수 있는가를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회적으로 반짝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의 창직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기존의 사업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만 진정한 의미의 ‘창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끊임없이 시장 조사를 하고, 사회와 소통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창직에 대한 답은 회의 테이블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
창직인이 반드시 가져야 할 자세가 있다면? - 열린 자세와 행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연하게 시장의 변화에 대처할 수 있고, 소비자의 새로운 요구를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사업을 지속적으로 영위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시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열린 자세와 새로운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바로바로 행동으로 실행할 수 있는 행동력이 창직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 창직의 장점, 매력이 있다면?
- 창직의 가장 큰 매력은 무언가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앞장선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가치,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는 것을 넘어서 시장 자체를 새로이 창출한다는 사실이 창직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요? 또, 창직 초창기에는 시스템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역량이 아주 중요합니다. 소규모에서 시작해서 점점 기업을 키워나가는 것이기 때문이죠. 한 사람 한 사람의 역량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내가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는 사실’이 즉각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이 창직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 롤모델이 있나요?
- 영국의 버진그룹을 만든 리처드 브랜슨 회장이 롤 모델입니다. 처음 창직을 결심하게 된 것도 이 분의 기사를 접하고 자서전과 책을 읽으면서입니다. 자신이 가장 재미있어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택하여 직접 회사를 운영하면서 큰 대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과정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특히 대기업이 된 이후에도 아직까지 회사 운영 원칙과 경영 스타일은 ‘재미있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인데 저도 꼭 실천하고 싶은 원칙입니다.
- 반드시 지키는 원칙이 있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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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적인 ‘NO!’를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절대로 ‘NO!’를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필요할 때에는 ‘NO!’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NO!’는 소비자의 소리, 주변 선배나 도움을 주는 사람들의 충고, 내부 회의에서의 다른 의견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NO!’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의 가장 큰 강점은 유연하고, 열려있다는 것입니다. 그 강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 의견이라거나 듣기 싫은 소리라고 하더라도 ‘NO!’라고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그 말을 곱씹어보고 고민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소한 조언과 다른 의견이 쌓이고 싸여,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더욱더 강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 평소 성격은 어떤 편인가요?
- 직관적이고 감성적인 편입니다. 힘들 때는 쉬어주고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혼자 여행을 간다거나 음악을 듣는 등) 감성에 빠지기도 한답니다. 이러한 성격 탓에 어떠한 일을 할 때 틀에 얽매이지 않으려 하고 논리나 숫자라는 정량적 부분 외에도 느낌이라는 것을 중시하곤 합니다. 또한 재미있는 것에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완전히 몰입해버리는 성격이기도 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면서 사교적인 성격입니다.
-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만들 수 있는 세계 최고의 기업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만든 회사로 인해 사람들이 새로운 가치를 얻을 수 있고 더 재미있고 행복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을 이루고 행복하고 재미있게 살면서 일과 생활의 밸런스를 지키며 사는 것입니다.
- 후배에게 전하고 싶은 말?
-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큼 즐거운 삶, 성공한 삶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슴 속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을 위해 용기를 내십시오. 실패할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할 용기조차 내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십시오. 그리고 항상 열린 자세와 적극적인 행동력으로 사업에 임하십시오.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남기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여러분이 하고 싶었던 일을 이왕 시작했다면 멋지게 성공하시길 MODU가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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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직 성공기
- 온라인평판관리사
한승범 | 맥신 코리아 대표
현재 하고 있는 사업을 소개해 주시지요.
저는 현재 ‘맥신 코리아’라는 온라인 평판관리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평판관리란 기업, 개인의 온라인상의 평판을 관리, 제고하는 것으로 크게 온라인 상의 원치 않는 사진이나 글, 동영상 등의 게시물을 삭제하거나 공인이나 회사브랜드의 온라인 명성을 고객이 원하는 방향으로 설정해 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창직 이전에는 어떤 경력이 있으셨는지요?
2000년 부모님의 한복사업을 돕고자 독학으로 컴퓨터와 홈페이지 제작을 공부하여 한복홈페이지를 만들어드렸는데 당시 야후코리아에 검색 1위가 되면서 매출이 1억에 달했습니다. 이후 전공을 살려 대학강단에도 섰고 2006년에는 경기도 지사 선거캠프에 사이버팀장으로 활약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때 포털사이트 알고리즘의 99%를 이해했다고 호언할 정도로 포털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이후 한양대에서 연구교수로 있다가 2008년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온라인 마케팅에서 최고의 실력을 갖추었다는 자신감에서 과감히 안정적인 대학을 포기한 것입니다. 물론 부모님사업을 도와드리는 것이 1차 목표였는데 2년 만에 한복대여 1위 브랜드가 되고 19개의 지점을 두기기까지 성공시켰습니다. 당연히 돈도 많이 벌었지요. 그러나 금융위기로 인해 매출이 급감했을 때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프랜차이즈 사업실패 후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받았고 절치부심하던 차에 세상에서 가장 잘하는 일이 뭔가를 심각하게 고심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온라인평판관리>였습니다. 이 분야만큼은 남다른 통찰력을 가지고 있고 남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실력도 갖추었다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사업을 시작해서 오늘의 맥신코리아를 세우게 되었습니다.그래도 ‘온라인평판관리’는 생소한 분야였을텐데요?
프랜차이즈 사업의 성공과 실패를 겪고 나서 저의 진정한 경쟁력은 무엇인가 심각한 고민을 했습니다. 한복대여 프랜차이즈 사업의 성공도 결국 ‘온라인평판관리’의 힘이었습니다.
2년 만에 싸구려 한복을 명품한복으로 탈바꿈시키는 작업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닙니다. 브랜딩 작업이 대부분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것을 감안할 때 온라인을 지배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저의 온라인상의 경쟁력을 적절한 용어로 규정할 수 없었는데‘온라인평판 관리’가 가장 잘 들어맞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온라인에 대한 남다른 이해도, 온라인에 대한 남다른 호기심, 그리고 통찰력이 결국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습니다.창직 아이템을 구상하면서 생긴 어려움은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온라인평판관리란 창직 아이템을 결정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세상에 없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반인들은 물론 전문가들도 모르는 직업과 일을 어떻게 홍보할 것인가가 가장 난관이었습니다. 이 일에 대한 이해도가 없는데 누가 우리 회사에 의뢰를 합니까? 더구나 전 사업의 실패로 8억의 빚을 지고 있는 상태에서 투자는 언감생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온라인이 주가 되는 세상에는 온라인상의 평판을 좌지우지할 수만 있다면 커다란 이익이 발생할 것이란 확신이 있었습니다. 악플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듯이 선플이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온라인상의 악의적인 게시물들로 고통받고 자살도 결심하는 사람들을 막겠다는 선에 대한 의지도 있었습니다. 가장 큰 난관이었던 자금 부족과 인식의 결핍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스스로 ‘온라인평판관리’란 일과 ‘맥신코리아’를 널리 알리지 못한다면 과연 고객의 평판을 관리할 수 있을까?란 믿음이 있었습니다.
즉, 스스로 알려야한다는 당위성이 있었고 날이 갈수록 사람들의 ‘온라인평판관리’ 일에 대한 이해도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온라인상의 기업위기가 터지면서 맥신코리아가 주목 받기 시작했고 결국 약간의 안정적인 상태가 되었습니다.다른 사람보다 먼저 아이템을 찾아‘선점’하는 것이 성공요인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새로운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선점효과’입니다. ‘퐁퐁’처럼 브랜드를 보통명사화 시키는 것이 사업에서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저 역시 ‘선점효과’를 위해 목숨걸고 뛰었고 오늘의 브랜드파워 1위에 오르는데도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선점하기까지 가장 어려웠던 점은 자금부족으로 투자여력이 전혀 없었다는 점과 아무도 몰라주는 일이었습니다. 자금부족은 피눈물나는 과정을 거쳐 차츰 극복했고 온라인 평판관리를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회사 브랜드를 높이기 위해 대대적인 ‘온라인 평판관리’를 했습니다. 물론 운도 어느 정도 따라주었던 것 같습니다.창직 준비 과정에서 특별히 주의할 점이나 알아야 할 점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창직이란 새로운 변화가 저절로 오기도 하지만 스스로 변화를 만들기도 합니다. 또 불확실한 미래의 직업을 만들어내는 약간은 황당한 일일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직접 만들어 내거나 아니면 미래의 직업을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얻기 위해서는 절대로 남들과 같이 행동하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신문, 잡지, 책 등을 통해 미래의 변화를 감지하고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늘 노력해야 하지요.
창직 준비는 일반 치킨집 창업과는 다릅니다. 치킨집이야 상권 좋은 곳을 고르고, 맛있는 치킨 만드는 비법을 알면되지만 ‘창직’이란 세상에 없는 것을 찾아내거나 만들어내야 하니까요. 제대로 창직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것도 감수해야 하는 험난한 길입니다. 이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공부와 경험을 통해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깊이있는 준비가 실패에 따른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온라인 마케팅 실력을 믿고 겁 없이 사업을 시작했는데 회계와 세무에 대한 지식이 없다보니 세금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창직을 준비중인 다른 분들도 본인의 관심분야뿐만 아니라 회계, 세무 등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계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자살을 결심한 고객의 목숨을 살려준 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원치 않는 인터넷 게시물에 의해 상처받고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남들은 쉽게 생각하고 올리는 단 한 장의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어느 날 주말에 고객으로부터 급한 연락을 받았습니다. 어릴적 장난삼아 찍은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되어 죽음까지 고민하며 혹시나 하고 연락을 했다고 하더군요. 저희가 동영상을 찾아 삭제했고 그 고객은 현재 잘 지내고 있는걸 보면서 일의 보람도 크게 느낍니다.창직을 고민중인 분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보통 사업에 성공하는 확률을 5%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사업가의 1%만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창직은 아마도 0.1%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힘들어도 그 과실은 달콤할 것입니다.
누구나 스티브 잡스와 같은 위대한 사업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통찰력(Insight)를 키워야 합니다. 통찰력은 사업가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덕목입니다. 미래에 대한 혜안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며 남들과 같이 살아서는 절대로 통찰력이 생기지 않습니다.
저는 50살입니다. 앞으로 최소한 30년을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막막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공부했던 것과 2000년 공부했던 HTML과 같은 것으로 지금까지 버텨왔었습니다. 하지만 그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것으로 30년을 더 일하며 먹고 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19 Again!” 프로젝트를 가동했습니다. 19살 고3 시절 체력, 건강, 공부,열정을 다시 가지고자 결심하였습니다.
그래서 120kg 초고도 비만에서 75kg의 정상인으로 만들었고, 10가지도 넘던 만성질병을 극복했습니다. 뇌도 다시 젊게 가동해 현재는 하루에 한 권 책을 읽을 정도의 지적능력을 확보했습니다. 여러분도 제 나이와 비슷할 겁니다. 여러분도 최소 30년을 열심히 일하고 50년을 건강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도 20대와 같이 만들고 뇌도 어린애처럼 만들어야 합니다.
창직의 길은 힘듭니다. 그만한 준비가 되어야 과실이 여러분께 돌아갈 것입니다. 요즘에 부업으로 책을 쓰고 있습니다. 첫 장에“신이시여 정녕 제가 이 책을 썼습니까?”라고 적었습니다.
여러분이 위대한 창직으로 “신이시여 정녕 제가 이 회사를 만들었습니까?”라고 말하시기를 기원합니다.